여기 땀의 흔적들이 있다.
2020 도쿄패럴림픽이 오는 24일 성대한 막을 올린다. 지난 26일 이천훈련장에서 출정식으로 이번 대회 선전을 다짐한 대표팀은 출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한국은 패럴림픽의 역사 속에서 전 세계와 함께 호흡하고, 함께 투쟁하며 희노애락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그 역사의 증표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메달 수확의 역사를 돌아본다.
메달 역사를 알기에 앞서 패럴림픽의 의미와 시작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패럴림픽(Paralympics)은 원래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영단어 'Paraplegic'과 올림픽(Olympic)을 합친 말이었다. 첫 하계 패럴림픽이었던 1960년 로마패럴림픽에서 모두 휠체어 장애인들만 참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6년 몬트리올 대회부터 다른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게 됐다.
한국은 1968년에 열린 제3회 텔아비브패럴림픽부터 처음 패럴림픽에 참가한 뒤 꾸준히 영광의 무대에 참여하고 있다. 1972년 제4회 하이델베르그패럴림픽에서는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송신남 선생이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로 교전 중 장애를 얻게 된 선생은 이를 극복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 탁구 휠체어 부문(TT1) 단식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 밖에도 한국은 금4‧은2‧동1개를 가져오며 대회 16위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한국의 메달 행진은 계속됐다. 1976년 제5회 토론토패럴림픽대회 금1‧은2‧동1개로 대회 27위, 1980년 제6회 안헴패럴림픽에서 금2‧은2‧동1개로 대회 26위를 차지했다. 1984년 제7회 스토크맨드빌&뉴욕패럴림픽은 뉴욕에서 동1개 가져왔고, 에이즈버러에선 은2‧동1개를 획득해 38위로 마쳤다.
한국의 역대 패럴림픽 최고 성적은 1988년 제8회 서울패럴림픽에서 거둔 7위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 40개, 은메달 35개, 동메달은 19개나 수확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패럴림픽 강국으로 자리했다.
서울패럴림픽은 단순히 우리나라가 성적 뿐 아니라 개최국으로 현대 패럴림픽의 새로운 시대를 개막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동일한 도시, 동반개최’ 관례를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일시설 사용’, ‘선수촌 제공’, ‘MVP 시상’ 및 ‘성화봉송 운영’ 등 수많은 최초사례와 함께 대회 엠블럼의 IPC 공식 엠블럼 차용 등 지대한 기여를 했다.
1992년 제9회 바르셀로나 패럴림픽에서 한국은 금11‧은15‧동18개로 대회 10위, 1996년 제10회 애틀랜타패럴림픽은 금13‧은2‧동15개로 종합순위 9위에 들었다.
2000년 제11회 시드니패럴림픽에서도 대회 10위권 안에 들었는데, 당시 금18‧은7‧동7개로 종합순위 9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2004년 제12회 아테네패럴림픽에서는 금11‧은11‧동6개로 16위,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은 금10‧은8‧동13개로 종합순위 13위였다. 2012년 제14회 런던패럴림픽은 금9‧은9‧동9개로 종합순위 12위였다.
리우패럴림픽에서 한국은 11개 종목의 139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금7‧은11‧동17개를 획득하며 종합 순위 20위를 기록했다.
이제 도쿄패럴림픽이다. 한국은 이번 도쿄패럴림픽에 양궁, 육상, 배드민턴, 보치아, 사이클, 유도, 역도, 조정, 사격, 수영, 탁구, 태권도, 휠체어농구, 휠체어테니스 종목에 선수 86명과 지원인력 72명 등 총 158명이 참가한다. 우리 대표팀은 금메달 4개, 은메달 9개, 동메달 21개로 종합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