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
'투혼의 태권청년' 주정훈(27·SK에코플랜트·세계 12위)은 동메달이 확정되자 오열했다.
주정훈은 3일 오후 8시 15분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 B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태권도 -75㎏급(K44) '세계 5위' 마고메자드기르 이살디비로프(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와의 동메달 결정전 리턴매치에서 24-14로 승리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패럴림픽 태권도 국가대표로서 첫 메달을 목에 걸며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주정훈은 이날 오전 16강에서 이살디비로프와 접전 끝에 31-35로 석패 후 8강 패자부활전에 나섰다.
첫 패배의 충격을 딛고 심기일전, 승승장구했다. 2015년 터키 삼순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 준우승자. 파티흐 셀리크(터키·세계 7위)에게 40-31로 완승하며 패자 4강에 올랐다. 패자 4강에서는 아불파즈 아부잘리(아제르바이잔·세계 9위)에게 46-32로 승리하면서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했다.
승자 준결승에서 후안 디에구 로페즈(멕시코)에게 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 나선 이살디비로프와 다시 대결했다.
주정훈은 이살디비로프와 경기 1회전부터 작정한 듯 강공으로 나섰다. 3연속 몸통 차기에 성공하며 6-0으로 앞서나갔다. 그의 절실한 발차기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음 급한 상대가 머리 부분을 가격하는 위험한 플레이로 감점이 이어지며 8-2로 앞선 채 1회전을 마쳤다.
2회전 초반 한차례 공격을 주고받은 후 신중한 탐색전이 이어졌다. 10-6에서 주정훈의 몸통 차기가 2차례 작렬했다. 14-7로 앞선 채 3회전에 돌입했다. 메달이 결정되는 3차전 만신창이가 된 다리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살디비로프가 몸통 차기로 추격에 고삐를 당겼지만, 45초를 남기고 주정훈의 3연속 발차기가 맞아 들며 24-14 완승을 거뒀다.
태권도 K44체급 경기는 한쪽 혹은 양쪽 손목 절단 선수가 출전하는 종목이다. 주먹 공격이 금지되고 모든 공격은 발차기만 가능하다.
주정훈은 이날 출전한 4경기 중 3경기에서 3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상대의 몸통을 노리는, 현란한 발차기 공격은 눈부셨다.
주정훈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이제 상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 태권도로 돌아오길 잘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자랑스러운 아들이 세계에서 3등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모님도 아들 자랑을 많이 하시면 좋겠다"고 기뻐했다.
이와 함께 "부모님과 함께 메달을 들고 할머니를 뵈러 갈 것이다. 할머니가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도 손자가 할머니 집에서 다치긴 했지만, 할머니 덕에 이 대회에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주정훈은 태어난 직후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두 살 때 소여물 절단기에 손목을 넣는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치매 투병 중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주정훈은 "할머니가 제가 자라면서 한탄을 많이 하셨다. 우리 손자 너무 잘 컸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고 자책하셨다. 이젠 그 마음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제 주정훈은 2024년 파리패럴림픽 금메달을 바라본다. 그는 "파리 대회 경기장을 미리 찾아봤다.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메달은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 가져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리에선 저도 1등을 할 수 있도록 죽어라 노력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주정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 비범한 재능으로 비장애인 전국대회 8강, 4강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으나 사춘기 시절 경기장에서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에 상처를 받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의 꿈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태권도가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꿈이 다시 살아났다. 2017년 12월 도복을 다시 입었고 올해 요르단 암만에서 치러진 도쿄패럴림픽 아시아 선발전을 1위로 통과,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도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첫 패럴림픽 무대에서 패자부활 8강, 4강을 모두 이겨내고 결국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