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
2020 도쿄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의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이다. 대회 막판 뒷심을 보여줬지만,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불굴의 투지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메달의 색, 순위만이 주는 수치적 의미를 초월한다.
실제 경기를 치르는 장애인 선수들의 승부욕과 목표의식은 매우 강하다. 패럴림픽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선수가 있고 반면 기대 이하의 성적에 실망하는 선수들도 많다.
패럴림픽은 비장애인 선수들이 출전하는 올림픽 못지않게 치열하고, 모든 걸 쏟아부으며 경쟁하는 무대다. '장애를 보지 말고 스포츠를 보라'고 했듯 순수하게 경기적인 관점에서 대회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 종합순위 41위...목표 달성 실패
대한민국 선수단의 도쿄 패럴림픽 목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9개, 동메달 21개로 종합순위 20위권 이내였다.
5일 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의 성적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2개로 41위에 자리했다.
마지막 날 배드민턴의 김정준(43·울산중구청)이 단식에서, 김정준과 이동섭(50·제주도)이 복식에서 은메달 2개를 획득하고, 4일 보치아 대표팀이 패럴림픽 9회 연속 금메달로 레이스에 힘을 보탠 장면은 인상적이다.
2008 베이징 대회 13위(금메달 10개, 은메달 8개, 동메달 13개), 2012 런던대회 12위(금메달 9개, 은메달 9개, 동메달 9개), 2016 리우대회 20위(금메달 7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7개)와 비교하면 하락세다.
1968년 처음 출전한 텔아비브(이스라엘)대회 이후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순위다. 역대 최고 성적은 1988 서울대회(금메달 40개, 은메달 35개, 동메달 19개)의 종합 7위다.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기초 종목 수영, 육상에서 단 한 개의 메달도 나오지 않았다.
리우대회 3관왕의 주역 수영 조기성(26·부산시장애인체육회)이 참가에 만족했고, 육상의 전민재(44·전북장애인체육회)는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양궁은 1968 텔아비브(이스라엘)대회 이후 53년 만에 메달을 따지 못했다.
종합 1위를 차지한 중국(금메달 96개, 은메달 60개, 동메달 51개)과 개최국 일본(11위·금메달 13개, 은메달 15개, 동메달 23개)에 크게 밀린다.
인도(24위·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 태국(25위·금메달 5개, 은메달 5개, 동메달 8개), 말레이시아(39위·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등 아시아 국가들보다 아래에 자리했다.
다만 메달의 총 개수로 매긴 순위가 공동 15위(24개)인 점은 그래도 위안 삼을 만하다.
'효자종목' 탁구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6개, 동메달 6개를 따내며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메달 쏠림의 이면이기도 하다.
주영대(48·경남장애인체육회)는 첫 금메달로 '노골드'로 웃지 못하던 선수단에 큰 선물을 안겼다.
특히 주영대가 시상대 제일 위에 선 남자 개인 단식(스포츠등급 TT1)에서 김현욱(26·울산장애인체육회), 남기원(55·광주시청)이 각각 은·동메달을 목에 걸며 태극기 세 개를 휘날렸다.
주원홍(65·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장) 선수단장은 4일 일본 도쿄 베이사이드 호텔 아주르 다케시바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늘 듣던 이야기가 저변 확대와 신인 발굴이다. 그런데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해선 크게 와 닿는 정책이 없었던 것 같다"며 "이번 패럴림픽을 계기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선수단 평균 연령 40대...사실상 참가국 중 가장 많아
21년 만에 패럴림픽 무대를 밟은 남자 휠체어농구는 스페인, 터키 등 강호들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으나 4쿼터 고비를 넘지 못했다. 체력 저하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코트 밸런스를 잃고, 턴오버를 남발했다. 40대 선수가 셋 있다.
휠체어농구뿐 아니라 유독 잘 싸우다가 막판 승부처에서 패하는 장면이 여러 종목에서 나왔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 85명의 평균 나이는 40.5세. 도쿄패럴림픽에 선수를 15명 넘게 보낸 국가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많다. 개최국 일본은 평균 33.2세, 중국은 29.7세다.
유망주 발굴이 쉽지 않아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더딘 모습이다. 53년 만에 메달이 없는 양궁대표팀에서 여자 선수 4명은 모두 50~60대로 구성됐다.
선수단 전체에서 최고령인 김옥금(61·광주시청)을 비롯해 조장문(55·광주시청), 최나미(55·대전시체육회), 김란숙(54·광주시청)이 모두 적잖은 나이다. 조장문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옥 선수단 총감독은 "고령화와 세대교체는 매번 패럴림픽에서 많이 받는 질문이다. 리우대회 이후 투입한 예산이 많았지만 하향평준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엘리트 선수에 대한 집중과 가능성 있는 선수는 차별화는 특별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완석 선수단 부단장(경기도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은 "어릴 때부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일이 늘어나는 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체육 시간이다. 장애인 체육 전문 인력이 있는 학교가 거의 없다 보니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체육 시간에 소외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갈수록 유망주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인체육 전문 인력 양성 없이는 진정한 통합교육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탁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주영대는 40대 후반이다. 그는 "탁구 종목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젊은 후배들이 나오고 올라오면 탁구 종목은 앞으로도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부진의 원인을 더딘 세대교체, 취약한 저변에만 떠넘기기에는 종목별로 드러난 운영 부실이 아쉬움을 남긴다.
검증된 지도자 등 전문성 있는 인력의 보강이 절실하다.
몇몇 종목에서 경기 일정과 규정을 몰라 손해를 보거나 볼 뻔한 장면이 가장 큰 종합대회라는 패럴림픽에서 여러 번 나왔다. 5년 동안 땀을 쏟은 선수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 미래가 기대되는 탁구 윤지유-양궁 김민수-테니스 임호원
지난달 끝난 도쿄올림픽에서 신유빈(17·탁구), 여서정(19·체조), 안산(20), 김제덕(19·이상 양궁), 황선우(18·수영)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주목받았다.
뛰어난 기량을 갖췄지만 승부에만 연연하지 않고, 올림픽을 즐길 줄 알았다. 거침없으면서도 세심한 언변, 탁월한 소통 능력을 선보이며 대중을 열광하게 했다.
도쿄패럴림픽에서도 밝은 미래를 예고하는 차세대 주자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2000년생 탁구 여자의 윤지유(21·성남시청)는 이미 2016 리우대회 여자단체전(TT1-3) 동메달을 획득한 경험자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여자 탁구의 미래로 평가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정상급 기량을 과시했다. 3살 때 흉추 3번 혈관이 터지는 혈관기형으로 하반신 마비가 생긴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수원복지관에서 탁구를 만나면서 인생길이 달라졌다.
1999년생 양궁 남자의 김민수(22·대구도시철도)는 두 번째 출전인 이번 대회도 메달 직전에서 패했지만 그의 기량과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김민수는 개인전 리커브 동메달 결정전에서 슛오프 끝에 패해 아깝게 4위를 기록했다. 그는 "패럴림픽은 두 번째인데 첫 출전 때보다 재미있었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고 했다.
조장문과 함께 출전한 혼성 단체전에서도 8강 탈락의 쓴맛을 봤지만 밝은 표정으로 보완할 점을 스스로 지적하며 2024 파리패럴림픽에서의 선전을 약속했다.
역시 두 번째 패럴림픽인 휠체어테니스의 임호원(23·스포츠토토)도 메달 없이 대회를 마쳤지만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잊지 못할 명승부를 펼쳤다.
세계랭킹 45위인 임호원은 단식 1회전에서 '프랑스 에이스' 게탕 망기(38·29위)를 상대로 2시간39분 혈투 끝에 2-1(3-6 6-4 6-1) 역전 드라마를 썼다.
주정훈(27·SK에코플랜트)은 태권도의 첫 패럴림픽 정식종목 채택에도 불구하고 종주국의 유일한 선수로 출전해 값진 동메달을 땄다.
남자 75㎏급(스포츠등급 K44) 첫 경기(16강)에서 패배를 안겨준 '세계 5위' 마고메자드기르 이살디비로프(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RPC)를 동메달결정전에서 다시 만나 꺾으며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주정훈은 2살 때, 할머니가 지리를 비운 사이 농기구에 오른손이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손목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메달 확정 후 경기장에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던 주정훈은 "경기 시작 전부터 '아, 오늘 하루가 내 태권도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 되자'고 이야기했는데 정말 동경의 대상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