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
"마음이 무겁다. 밤새 잠을 설쳤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4일 일본 도쿄 베이사이드 호텔 아주르 다케시바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토로했다.
정 회장은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장, 이천선수촌장을 두루 거친 장애인 체육 행정가다. 2017년부터 이천선수촌장으로서 도쿄패럴림픽을 준비하다 지난 2월 26일 제5대 대한장애인체육회장에 취임했다.
회장이 된 후 첫 수장으로 나선 도쿄패럴림픽, 14개 종목 159명을 파견한 대한민국은 금메달 4개, 은메달 9개, 동메달 21개, 종합순위 20위를 목표 삼았으나 금메달 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2개, 종합순위 41위를 기록했다.
1968년 첫 출전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회 노메달 이후 53년만의 최악 성적이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 금 9개, 은 9개, 동 9개로 종합 12위, 2016년 리우 대회에선 금 7개, 은 11개, 동 17개로 종합 20위를 기록했다. 뚜렷한 하향세다.
물론 과거처럼 성적이 전부인 세상이 아니다. 판단은 보는 국민들의 몫이지만 연간 훈련비로 300억원을 쏟아붓고,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똑같은 경기력 향상 연구 연금을 받는 등 과거에 비해 향상된 장애인 엘리트 체육의 위상을 돌아볼 때 실망스러운 결과임에 틀림없다.
메달리스트 출신 첫 수장으로서 그는 태극마크의 책임감을 통감했다. "내가 왜 회장이 됐나, 장애인 체육과 후배들을 위해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할지를 깊이 고민했다. 숙제가 더 많아졌다"고 했다.
정 회장은 "제 결론은 선택과 집중이다. 훈련 시스템, 신인 선발 시스템, 전임 지도자 문제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 대한체육회, 비장애인 시스템을 막연하게 따라간 부분이 있다"고 돌아보면서 장애인 체육 맞춤형 혁신과 국가대표 시스템의 쇄신을 예고했다.
정 회장은 "패럴림픽에서 외국선수들과 경기 현장을 둘러보면서 확신을 갖게 됐다. 어리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집중 육성, 지원해야 한다. 현재의 일률적인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으로는 안된다.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과 해외의 선진 시스템을 연구하고 분석했다. 전문가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우리나라 장애인체육에 최적화된 훈련 시스템을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다.
정 회장은 또 스포츠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체계적인 스포츠 과학의 뒷받침 없이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메달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스포츠 과학 지원은 걸음마 단계"라고 귀띔했다.
이어 "스포츠 등급에 맞춰 선수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과학적이고 세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인 체육 선진국 영국의 경우, 등급 분류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뤄져 있다. 등급과 종목에 맞는 장비 연구 및 개발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휠체어테니스 임호원의 경우에도 허리에 힘을 쓸 수 있게 휠체어 바스켓을 교체한 후 서브가 달라졌다. 사격의 스프링, 탁구선수들의 휠체어 높이 등도 장애유형과 종목, 등급에 맞게 연구, 개발해 최상의 경기력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를 위한 스포츠 과학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 종목별 맞춤형 장비 지원, 체력, 심리, 기술-동작 분석 등 분야별 전담 스포츠 과학 인력을 확보하고 종목지도자와 상시 협의하면서 훈련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절실하다"고 했다. "스포츠 과학 예산이 확보된다면 국가대표 훈련 예산과 사업 효과를 극대화해 파리대회, LA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선수층의 고령화, 노쇠화 역시 패럴림픽 때마다 지적돼온 고질적 문제다. 특히 이번 대회 육상, 수영 등 기초종목에서 한국은 단 1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육상에선 단 2명의 레전드 선수, 만49세 유병훈(휠체어육상)과 만44세 전민재(육상 100-200m)가 나섰지만 발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육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5년전 리우 대회에서 조기성이 깜짝 3관왕에 오르며 파란을 일으킨 수영에서도 끝내 메달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정 회장은 "기초종목뿐 아니라 우리나라 장애인 전문체육에 참가하는 선수가 많이 부족하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3년 앞으로 다가온 2024년 파리패럴림픽에선 도쿄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젊은 피'와 2018년부터 추진해온 기초종목 육성 사업의 결실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정 회장은 "도쿄패럴림픽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2018년부터 기초종목 육성 사업을 통해 발굴한 배드민턴 유수영, 정겨울 등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고 있다. 휠체어육상에도 현재 유망주 10여 명이 훈련중이다. 이번 대회 탁구의 윤지유, 김현욱, 태권도의 주정훈, 휠체어테니스의 임호원 등 차세대 선수들의 발견은 긍정적이다. 이들을 적극 지원해 향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장애인체육 인식 개선과 저변 확대를 위해 생활체육, 학교체육 활성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에 정 회장은 공감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직후 문재인 대통령님의 지시로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 정책이 추진됐다. 전국에 반다비체육관 150개를 짓고 2000명의 장애인체육지도자를 배치하고 스포츠 바우처를 지원하는 정책이 시행중이지만, 아직 현장의 성과는 미비하다"고 했다.
정 회장은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이 263만 명이다. 이중 절반 이상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거주한다"고 현실을 짚었다. "반다비체육관은 시군구 각 1곳씩 선정해 30억원을 지원하는데, 서울 도심이나 수도권에 이 돈으로 체육시설을 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체육시설일수록 접근성이 제일 중요한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생활체육 지도자 2000명의 경우도 월급이 200만원 남짓, 세금 떼면 180만원 받는다. 최소 급여도 안되는 상황에서 지도자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이 부분도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장애인 체육의 수장으로서 정 회장은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태극마크의 자부심과 투혼, 프로페셔널한 사명감을 강조했다. "아무리 예산을 확보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도 결국 경기를 뛰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가대표의 자부심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보다 더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더 당당하게 도전하길 바란다. 많은 이들이 패럴림픽은 참여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지만, 스포츠인은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끝까지 도전하는 것, 한계를 이겨내고 극복해내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